본문 바로가기
영화정보

국가부도의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by 인포보따리 2024. 12. 3.

- 줄거리

 대한민국은 1997년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한국 경제에 대한 걱정이 없던 시기에 미국 월가의 모건스탠리 어느 사원의 컴퓨터에 미국 투자자들은 모두 한국에서 탈출하라는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위기를 감지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인 '한시현'이 한국은행 총장에게 보고합니다. 이런 한국 경제위기를 감지한 사람은 한시현 통화정책팀장만이 아니었습니다. 금융회사의 신입사원인 '윤정학'은 버스 안에서 한국 경제의 비관적인 뉴스를 접하게 되고 잠시 지나갈 뉴스가 아니고 한국경제 전체가 무너질 거라고 판단합니다. 고민하던 윤정학은 직장을 그만두고 투자회사를 개업하여 돈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역베팅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작은 공장의 사장이자 가장인 '갑수'는 대형 백화점과의 5억짜리 계약을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성사하게 됩니다. 한시현과 한국은행 총장은 현재의 심각한 상황을 논의하여 재정국 차관에게 보고하지만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무시를 넘어 경제부 수석에게 보고하게 되고 대통령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던 정부는 자신들의 무능이 아닌 국민들의 사치 때문에 경제가 무너졌다며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며 국가부도를 결정하게 됩니다. 국가부도가 결정되며 환율이 급등하게 되고 투자자를 모아 달러에 투자했던 정학은 떼돈을 벌게 됩니다. 반면, 어음으로 계약했던 갑수는 현금 유통이 되지 않아 회사를 부도 처리하게 됩니다. 부도처리로 거래처에 대금지급을 못 하게 되고 그 이유로 거래처 사장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괴로워합니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뒤, 갑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공장 사장이 되어 열심히 일상을 보냅니다. 정학은 기업 회장이 되어서 IMF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고 한시현은 개인 연구소를 개업하여 경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당시 정부 요직에 있던 사람들은 재벌 2세와 같이 놀면서 또 다른 위기설을 무시합니다.

- 감상평

 국가부도의 날 중 '윤정학'의 판단과 행동을 보고 블로그 제목의 부제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로 정했습니다. 국가 부도라는 일반 서민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미리 알아 차리고 그 상황에서 자기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정학의 판단은 본 받을 만 했습니다. 하지만, 극 중 정학은 자신을 믿고 투자한 투자자한테 '내 앞에서 두 가지는 하지 마! 첫 번째는 반말하지 말고 두 번째는 돈 벌었다고 좋아하지 마!'라며 국가부도로 자신은 돈을 벌고 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 또한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마냥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지만, 그 하늘 아래에서 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괴로워한다면 혼자 솟아난다고 해도 그 마음은 공허할 것 같습니다. IMF를 겪지 못했던 저로서는 교과서를 통해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게 사실이지는 않겠지만,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통해 그때 당시의  정부의 무능, 대다수의 국민을 대변하는 '갑수', 어려움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정학'을 통해 그때 당시 우리나라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또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 해볼 수 있었습니다.

- 영화의 시대적 배경

 1986년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의 3저현상 덕분에 우리나라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당시 전 세계적으로 환율제도를 고정환율제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고정환율제는 환율 자체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거래 자체는 안전정이지만, 수출경쟁력이 하락하거나 무역수지가 안 좋아 질때는 이것을 반영하지 못해 국가간의 경제 불균형이 발생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3저 호황에 취한 기업들은 국제적으로 문어발 식 확장을 시작했고, 은행들은 부채 상환에 대한 능력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기업들에게 대출을 아무렇게나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성장 전략과 고정환율제는 우리나라 경제를 전체적으로 불균형으로 만들었고, 1996년에 230억 무역적자, 1,000억 달러 이상의 외채가 발생하게 됩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997년 태국에서 시발된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우리나라에도 확산이 되었습니다. 이때 정부는 이것을 보고 환율을 방어 하기위해 외화를 소진하는 잘 못된 대응을 했습니다.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떨어지는 한국을 보고 신용등급 강등과 함께 외국 자본이 급격하게 유출 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돈을 벌수 없게 되고, 은행의 부채를 갚지 못하게 되어 금융권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게 되어 국민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반응형